올리브 오일 등급의 진실, 엑스트라 버진과 산도의 화학

olive oil tasting glass

한 병의 라벨이 숨기고 있는 것: 엑스트라 버진이라는 단어의 무게

슈퍼마켓 진열대에는 적게는 만 원대부터 많게는 십만 원을 넘는 올리브 오일들이 나란히 서 있다. 모두 같은 단어, 즉 엑스트라 버진(Extra Virgin)이라는 표시를 단 채로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실제로 무엇을 보증하는지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산도 0.8 퍼센트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왔고, 왜 그 숫자가 다른 등급과의 경계선이 되었는가. 이 글은 한 병의 올리브 오일이 라벨에 그 단어를 새기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화학적, 관능적, 법적 시험의 풍경을 정리한다.

올리브 재배의 역사는 기원전 5000년경 카르멜 해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Wikipedia의 올리브 오일 항목은 지중해 일대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정리한다. 2022년 기준 세계 생산의 24퍼센트를 스페인이 담당하며,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가 그 뒤를 잇는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식품이지만, 등급 체계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국제올리브협회와 1959년의 기준선

현대 올리브 오일 등급의 골격은 국제올리브협회(International Olive Council, IOC)가 만들었다. 1959년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설립된 이 정부 간 기구는 올리브 오일과 식용 올리브의 품질 기준, 분석 방법, 명칭 사용을 국제적으로 조정한다. 유럽연합과 그 외 회원국들은 IOC 기준을 자국 법령에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미국은 별도의 USDA 기준을 운영하지만 핵심 골격은 IOC와 일치한다.

IOC가 정의하는 올리브 오일 등급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기계적 압착만으로 추출한 버진 계열, 둘째는 화학적 정제 과정을 거친 정제 계열, 셋째는 두 종류를 혼합한 블렌드 계열이다. IOC 공식 사이트의 올리브 오일 정의에서 가장 먼저 강조하는 부분은 한 가지다. 버진 올리브 오일은 오로지 물리적 방법, 즉 세척, 디캔테이션, 원심분리, 여과만으로 얻은 기름이며, 어떠한 화학적 처리도 받지 않은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정의가 곧 엑스트라 버진의 출발점이다.

산도라는 숫자: 0.8 퍼센트가 의미하는 것

등급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화학적 지표는 산도(free acidity)다. 여기서 산도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맛이 아니라, 오일 100그램당 유리 올레산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그램 단위로 표시한 수치다. 올리브가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상처를 입거나 시간이 지나면 트리글리세리드가 분해되어 유리 지방산이 만들어진다. 즉 산도가 높다는 것은 그 오일을 만든 올리브가 신선하지 않았거나, 압착 과정에서 변질이 일어났다는 화학적 흔적이다.

IOC 기준에 따르면 엑스트라 버진은 산도가 0.8그램 이하여야 한다. 버진은 2.0그램, 보통 버진은 3.3그램까지 허용되며, 그 이상은 람판테(lampante)로 분류되어 그대로는 식용으로 판매할 수 없고 정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정제 올리브 오일은 화학적 처리 후 0.3그램 이하의 산도를 가지며, 시중의 단순 표기 올리브 오일은 정제유와 버진유를 섞은 블렌드로 1.0그램 이하의 산도를 갖는다.

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페록사이드와 자외선 흡광

흥미롭게도 산도가 낮다고 해서 곧바로 엑스트라 버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제유는 화학 처리를 거쳐 산도가 0.3그램 이하로 떨어지지만 결코 엑스트라 버진이라 부르지 않는다. 진정한 엑스트라 버진은 산도뿐 아니라 페록사이드값(과산화물가)이 킬로그램당 20밀리당량 이하여야 하고, K232와 K270이라 불리는 자외선 흡광 지표도 각각 2.5와 0.22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이 자외선 지표는 산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중결합 화합물의 양을 측정하는 기법으로, 빛이나 산소에 노출되어 변질된 정도를 정량화한다. 정제유가 산도는 낮지만 K값에서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엑스트라 버진은 신선함의 화학적 증거인 동시에, 비정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관능 평가와 16가지 결함: 사람의 혀가 가진 권위

화학적 기준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IOC는 정식 자격을 갖춘 패널이 진행하는 관능 평가(panel test)를 등급 판정의 필수 조건으로 둔다. 여덟 명에서 열두 명으로 구성된 시음 패널이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시료를 평가하며, 한 가지 결함도 검출되지 않고 과일향이 양성으로 확인되어야만 엑스트라 버진으로 분류된다.

패널이 검출하는 결함은 16가지로 표준화되어 있다. 펀티(곰팡이 발효취), 모스토(머스트취), 무피도(곰팡이취), 마디로(나무 통취), 리스카도(가열취) 같은 명칭들이 그 목록을 채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작가 톰 뮬러가 2011년 저서 Extra Virginity에서 보고했듯,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는 엑스트라 버진 표시 제품 중 상당수가 이 관능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0년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조사에서는 미국 상위 다섯 개 브랜드의 73퍼센트가 IOC의 엑스트라 버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되었다.

콜드 프레스, 콜드 익스트랙션, 그리고 첫 압착의 신화

라벨에서 자주 만나는 콜드 프레스(cold-pressed)와 콜드 익스트랙션(cold extraction)이라는 표현에도 정확한 정의가 있다. EU 규정에 따르면 두 표현 모두 27도 이하의 온도에서 추출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 추출 수율이 높아지지만 폴리페놀과 같은 휘발성 풍미 화합물이 손실되고 산화도 가속된다. 그래서 고급 엑스트라 버진은 일관되게 저온 공정을 유지한다.

한편 첫 압착(first cold press)이라는 문구는 현대 추출 공정에서 사실상 마케팅 잔재에 가깝다. 오늘날 대부분의 올리브 오일은 압착이 아닌 원심분리 방식의 연속식 디캔터로 추출되기 때문에, 첫 압착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술적으로 옛 방식의 표현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문구가 여전히 라벨에 살아남는 이유는 단순한 신뢰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등급 체계가 말해주는 더 큰 그림

한 식재료의 등급 체계는 결국 그 식재료의 산업 구조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본 사이트의 캐비어 등급의 진실에서 살펴본 벨루가, 오세트라, 세브루가의 위계가 어종과 알의 크기로 결정되듯, 올리브 오일의 등급은 산도와 관능과 추출 방식이라는 세 축으로 결정된다. 두 체계 모두 라벨 한 줄에 응축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만, 그 한 줄 뒤에는 수십 항목의 분석 데이터와 패널의 혀가 자리잡고 있다.

엑스트라 버진이라는 단어를 다음에 만났을 때, 그것은 단순히 좋은 기름이라는 광고 문구가 아니다. 산도 0.8그램 이하, 페록사이드 20밀리당량 이하, K값 통과, 결함 0, 양성 과일향 확인. 다섯 개의 시험을 모두 통과한 기름만이 그 단어를 새길 자격을 갖는다. 한 병의 라벨이 말해주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결국 한 그릇의 샐러드와 한 조각의 빵을 다르게 만드는 가장 작은 차이일지도 모른다.